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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항상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내가 접하는 책들의 대다수가 비슷한 성향이라는 것이다. 그래서 한번쯤 다른 성향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. 어떤 관점에서 가치판단을 하는지, 어떤 부분을 중시하는지.. 특히 이번 여름에 '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'을 읽고서 그 욕구가 더욱 커졌다. 그 책이 발간된 2010년 이후 중간지대가 없어지고 극심한 감정소모를 동반한 헐뜯기가 양 진영간 펼쳐졌기 때문이다. 


  그래서 보수에 관한 책을 찾던 와중에 혹자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았다. 도덕심리학 책인데,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책이라고 했다. '명쾌하게 설명한다'는 말에 꽂혔다. 게다가 도덕심리학은 생소한 분야라 궁금하기도 했고.. 마침 군주론도 다 읽었던 참에 이 책을 대출했다. 약 2주에 걸쳐 읽어나갔고, 양 진영의 차이에 대한 해답을 명쾌히 얻을 수 있었다.



  원래 책의 내용을 글에서 일일이 말하는 편은 아니지만, 이 책은 중심 내용을 짚으며 이야기해야 할 것 같기에 파트별 핵심 내용을 요약, 정리한 후 감상을 풀겠다. 각 파트를 나눈 기준은 이 책에서 말하는 도덕심리학의 3가지 원칙이며, 이에 따라 책은 크게 3가지의 주장을 펼친다.[각주:1]



제 1원칙 : 직관이 먼저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.


  이 책은 직관과 추론의 관계를 코끼리(감정, 직관)와 기수(논리, 이성)에 비유하며 설명한다. 이성이 마땅히 주인이라는 플라톤, 이성과 감성이 서로 독립적인 공통통치자라는 제퍼슨, 이성은 감성의 하인에 불과하다는 흄. 저자는 실제 사례를 설명하며 3가지의 견해 중 흄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며 도덕 판단은 직관적, 감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추론은 감정에 따라갈 뿐이라고 한다.


  개인적으로 여기에 크게 공감했다. 평소에 어떤 사안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때 일단 직관적으로 판단을 먼저 내리는 편이다 보니 1장에서 4장까지 나온 내용이 몸소 와닿았다.[각주:2] 나 뿐만 아니라 법원 판례들 중에서도 결론이 먼저 정해진 판례가 있을 정도니.. 평소에 생각하던 부분에 이론적 뒷받침이 생긴 느낌이었다.


제 2원칙 :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.


  인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저자는 자라온 환경에 따라 도덕의 개념이 다르게 형성된다고 한다.[각주:3] 또한 도덕은 여러가지 면에서 미각과 비슷하며, 도덕도 미각처럼 5+1가지의 기반[각주:4]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. 이 기반들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들인데, 마치 책의 초고처럼 선천적이면서도 수정이 가능한 것이라 한다. 마지막으로 진보[각주:5]와 보수[각주:6]가 이 중 어떤 부분을 중시하는지, 정치적으로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.


  5~8장에서 나의 도덕 매트릭스를 확인한 다음 내 주변 사람들의 매트릭스를 예측해보니, 그 차이가 피부에 와닿았다. 당장 나와 우리 부모님의 생각 차이만 봐도... 여기에 그치지 않고, 우리나라의 각 세대나 계층 등 다방면에 걸친 집단의 매트릭스를 생각해봤다. 우리나라 집단들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오히려 미국보다 명백히 차이날지도.. 내용이었기 때문이다.


제 3원칙 : 도덕은 사람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.


  여기서의 핵심 비유는 '인간은 90%는 침팬지, 10%는 벌과 같다.'이다. 여기서 '10%의 벌'이란 표현이 핵심이다. 저자에 따르면, 인간은 개별적이면서도 특정 조건하에서는 자신보다 커다란 집단에 빠져드는 능력이 있으며[각주:7], 다차원적인 선택[각주:8]에 따라 집단에서 살도록 진화된 존재라고 한다. 이 건강한 '관계' 속에서 이루어지는 '편향적 사랑'[각주:9]이 인간의 삶의 수준을 높인다고 주장한다.


  그러면서 저자는 종교가 이 '집단 모임'의 영역에서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. 그리고 정치 역시 몇 가지의 세세한 차이를 제외하면 유사하다고 본다. 그렇게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이 믿는 도덕 때문에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간의 특성을 지적하며 진보와 자유, 보수의 각 진영에서 본받을만한 부분을 짚고 서로 건설적으로 대화하며 발전해나가자고 한다.


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내게 9~11장의 내용은 심리적인 거리가 있었다. 나같은 개인주의자는 뒤처지는 인간인가... 하지만 막상 책을 따라가니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. 특히 종교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. 군집스위치는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의 관중들을 생각하며 감 잡았고.. 

비록 촛불혁명과 같은 쾌거도 있지만,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감정 소모를 동반한 헐뜯기가 심해졌기 때문이다. 속된 말로 '중간이 없어진' 오늘이다.

출처: https://schluss.kr/1320?category=694284 [Echte Liebe]

출처: https://schluss.kr/1320?category=694284 [Echte Lieb



  이 책은 심리학에 대한 학술적인 내용을 담으면서도 현학적이지 않고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.[각주:10]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도 충분하고, 실제 예시(혹은 사례)도 충분히 와닿았다. 특히 몇몇 사례는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써먹어야겠다 싶을 정도니까.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마다 그 장의 내용을 요약해주는데, 지금까지 읽었던 내용을 한번 더 복기할 수 있어 좋았다. 여러모로 독자에게 친절한 책이다.

  다만 이 책에서 말하는 도덕의 정의는 물에 물탄듯, 술에 술탄듯하다.. 11장의 끄트머리에서야 도덕을 정의하는데, 철저히 서술적 정의에 따른다지만 결국 "그건 사회에 따라 다르니 딱 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다."는 의미로 느껴졌다. 뭔가 지나치게 이상적인 느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을 듯. 양쪽 다 일리가 있다는 주장이 으레 그렇긴 한데..[각주:11]



  그래도 자신의 도덕에서 한발짝 벗어나 사상이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고 이해하도록 포인트를 잡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겠다.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원하는 바를 내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봐야겠지. 나 역시 최소한 소모적인 감정 논쟁을 떠나 건설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. 부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보고 성향이 다른 상대방을 바라보는 창을 얻었으면 한다. 노파심에 말하지만, 이 저자가 말하는 건 누가 말했던'통합'이 아니라[각주:12] 생각의 폭을 넓히고 조금 더 건설적으로 대화하자는 거니까. 특히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었으며, 서양에 비해 논쟁 시 감정이 잘 섞이는 편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. 저자도 그렇게 보고있는 듯하고.

 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며,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.

결국 중고로 업어왔다(....).


  1. 1~4장은 제 1원칙, 5~8장은 제 2원칙, 9~12장은 제 3원칙 [본문으로]
  2.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.. 때론 내 '기수'가 '코끼리'를 멈춰세워야 할 때도 있다. 쉽진 않지만. [본문으로]
  3. 책에서는 도덕 '매트릭스'라고 표현한다. 영화 '매트릭스'의 매트릭스에 빗댄 것이다. [본문으로]
  4. 배려/피해, 공평성/부정, 충성심/배신, 권위/전복, 고귀함/추함, 자유/압제. 여기서 자유/압제는 8장에서 추가된 기반이라 5+1이라 표현했다. [본문으로]
  5. 배려 기반과 공평성 기반, 자유 기반을 중요시한다. [본문으로]
  6. 6가지의 기반을 균형적으로 본다. [본문으로]
  7. 이런 능력을 저자는 호모 듀플렉스라고 한다. [본문으로]
  8. 여기에 집단 선택도 포함된다. [본문으로]
  9. 서로에 대한 동질감,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, 무임 승차자에 대한 억제로 구성되어 있다. [본문으로]
  10. 이건 번역의 힘일지도. 그러니 저자뿐만 아니라 옮긴이의 역할도 크겠지. [본문으로]
  11. (이 책에 따를때)나도 꽤 WEIRD에 속하다보니 더 그럴지도. 조금 더 내 성향을 자세히 말하자면, 진보+자유 성향. 보수에서 말하는 충성심, 권위, 고귀함 가치는 여전히 내게 거부감이 있다.. [본문으로]
  12. 책에 따르면, 다수의 경쟁집단과 파벌이 독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. [본문으로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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